다산초당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글.사진: 廉正義염정의, 參照.引用.轉載: 네이버백과사전, 다음백과사전
야생화는 제가 전문가가 아니므로 확인해야 합니다
2003.02.28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실학을 集成한 유적지

만덕산에 자리잡고 강진만을 한눈으로 굽어보는 다산초당은 원래는 橘洞 尹奎魯의 산정이었는데,
다산이 이곳에서 謫居하는 동안에 실학을 집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의 초당은 도괴되어 1958년에 강진의 다산유적보존회가 주선하여 원래의 柱礎 위에 현재의 초당을 중건하였다.

丁石 ·다조 ·藥泉 ·蓮池 등 茶山四景,
정석은 다산이 석벽에 친히 글씨를 새긴 것이고,
다조는 뒷담 밑 약천의 石澗水를 손수 떠다가 앞뜰에서 차를 달이던 靑石이며,
연지는 초당 동쪽에 수양을 늘어뜨린 아담한 연못,
연못 안에 몇 개의 괴석을 쌓아 石假山을 쌓았다.



01. 매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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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다산초당 오르는 길











08.









    옥정(玉井)이 흐레는 없고 모래만 깔렸으니
    한바가지 떠 마시면 찬하(餐霞)보다 상쾌하다오
    처음엔 돌틈의 승장혈(承漿穴)을 찾았는데
    도리어 산중에서 약닳이는 사람이 되었네
    길을 덮은 연한 버들 비스듬히 물에 떠있고
    이마에 닿은 작은 복숭아 거꾸로 꽃을 달고 있네
    담도 삭이고 묵은 병도 낫게하는 약효는 기록할 만하고
    나머지 또 길어다가 벽간다(碧磵茶)끓이기에 좋다오

    초당의 왼쪽 뒤편에는 작은 옹달샘이 하나 있다.
    다산 생전에 식수로 사용했다는 약수는 지금도 그 맛이 달고 청량하기가 이를데 없다.
    이 샘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솟아난다고 한다.

    다산은 초당 뒷편에 바위 틈을 파서 이 약수터를 만들고,
    그 이름을 약천(藥泉)이라고 했다.
    다산에서 자생하는 차를 약천의 맑은 물로 정갈한 차조 위에서 끓여 마시면서
    "시원하기가 마치 안개를 머금는 듯 하다"고 했으니
    그 은은한 맛이 초당의 아침 안개처럼 입안에 맴도는 듯 하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있다"고 한 다산의 독백,
    아득한 하늘가 절역(絶域)에서의 그 고독을 어쩌면 그 차로서 다스렸는지도 모를일이다.




09.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과 비류폭포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 갯가의 괴석 모아 산을 만드니 진짜 산보다 만든 산이 더 멋지구나.
    가파르고 묘하게 앉힌 삼층탑 산 오목한 곳 모양따라 한가지 소나무를 심었네
    서리고 휘감긴 묘한 모습 지봉석을 쭈그리고 앉힌 듯 뾰족한 곳 얼룩 무늬 죽순이 치솟은 듯
    그 위에 산 샘물을 끌어다 빙둘러 만든 연못 물밑 고요히 바라보니 푸른 산빛이 어렸구나

    초당을 향하여 오른쪽으로 작은 연못이 하나 보인다. 이것은 다산이 바닷가의 돌을 주워 만든 연지석가산이다.
    연못을 파서 연과 잉어를 키우고,
    물 가운데는 석가형상의 돌을 놓아 마음을 비우고 가만히 물위를 바라보노라면
    아름답고 새로운 세계하나가 물 위에 펼쳐지는듯 하다.
    또한 산위에서 흐르는 물을 이용해 작은 비류폭포를 만들어 자연의 음악과 정취를 즐겼으며
    주위에는 동백과 작은 꽃들을 심어 마음을 달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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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강진만... 건너편은 강진군 칠량면, 대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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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동암, 천일각










    다산선생이 유배될 당시 흑산도에 유배된 둘째 형 정약전과 가족이 그리울 때 형과 가족을 생각하며 이곳 잔등에서 저 멀리 강진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던 곳으로 당초에는 건물이 없었으나 선생의 마음을 되살리기 위해 1975년 강진군에서 건립하였다.
    - 안내판에 있는 글 옮김

    초당을 옆으로 약간 비켜나서 산길을 접어들어보면 바로 천일각이 있다.
    갑자기 시야가 확 트여 한눈에 구강포(강진만)가 시원하게 들어온다.

    다산은고향 마현이 그리울 때 마다 이 자리에 섰으리라
    고향의 앞강 소내에서 지내는 가족들이 얼마나 보고싶었을까...
    또한 멀리 흑산도로 유배된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애달프고 간절하게 서 있던 곳이다.

    이곳은 다산의 그리움을 바람에 띄워 보는 산 언덕이었는데 후에 다산유적보존회에서 천일각을 세운 것이다.
    천일각이 있는 옆 산길은 다산과 혜장이 오고 가던 백련사(800m)로 이어져 있다




17. 동백꽃











18. 앞마당에 있는 반석으로

    푸른 돌 평평히 갈아 붉은 글자 새겼으니
    차 끓이는 조그만 부뚜막 초당앞에 있구나
    반쯤 다문 고기목 같은 아궁이엔 불길 깊이 들어가고
    짐승 귀 같은 두 굴뚝에 가는 연기 피어나네
    솔방울 주어다 숯 새로 갈고
    매화꽃 잎 걷어내고 샘물 떠다 더 붓네
    차 많이 마셔 정기에 침해됨을 끝내 경계하여
    앞으로는 단로(丹爐)를 만들어 신선되는길 배워야겠네

    초당 앞 마당에 크고 넓적한 바위가 하나가 있다. 이것이 다산이 솔방울을 지펴 차를 끓이던 다조이다. 다산은 초당 앞 뜰 앞에 크고 널찍한 바위를 옮겨다 놓고, 이 바위에서 차를 끓였다. 뒤꼍 약천에서 맑은 물을 떠다가 앞마당 다조 위에서 솔방울을 지피며 차를 끓여 마셨던 다산 차를 마시며 매일 매일 마음을 새롭게, 정신을 맑게 하기를 끊임없이 하여 그 많은 저술의 힘을 키워냈는지도 모른다.

    황동의 화로에 솔방울을 지펴 약천의 물로 차를 끓여 마셨던 다조, 많은 저술로 인해 침침해진 눈과 피로한 몸을 돌보던 곳이라고...













19.











20.









    죽각(竹閣)서편 바위가 병풍같으니 부용성(芙蓉成)꽃주인은 벌써 정씨(丁氏)에게 돌아왔네
    학이 날아와 그림자지듯 이끼무늬 푸르고 기러기 발톱 흔적처럼 글자는 이끼속에 또렸하다.
    미로(迷路)처럼 바위를 경배하니 외물(外物)을 천시한 증거요 도잠(導潛)처럼 바위에 취했으니 제몸 잊은 것을 알리라
    부암(傅巖)과 우혈(禹穴)도 흔적조차 없어졌는데 무엇하러 구구하게 또 명(名)을 새기리오

    선생의 체취가 그대로 바위에 새겨진 「정석(丁石)」이란 글자.
    해배를 앞두고 발자취를 남기는 뜻에서 커다란 바위에 새긴 것으로
    다산선생의 정갈하고 꼿꼿한 기품이 느껴지는 글씨다.

    다산은 거기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역경을 오히려 학문의 기회로 삼아 선비로서의 삶을 다했던 것이다.
    또한 자신의 결백함과 올 곧은 마음을 길이 길이 후세에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글씨에서는 기교를 부리지 않은 선비의 올 곧은 심성이 베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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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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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바다 건너 멀리 보이는 곳이 백련사가 자리한 만덕산이며 칠량면? 대구면? "전망좋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25. 사시 사철 푸르다는 마량의 까막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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