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286m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서
글.사진: 廉正義염정의, 參照.引用.轉載: 두산백과사전, 다음백과사전
야생화는 제가 전문가가 아니므로 확인해야 합니다
2005.09.20


01.











02. 붉은호장근











03. 붉은호장근











04. 꼬리풀











05. 호장근











06.











07.











08. 꽃무릇











09. 1,500년전 그때 쌓은건지...










아차산성

1973년 5월 25일 사적 제234호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0만 3375㎡이다. 아차산에 있는 이 산성은 아단성(阿旦城)·장한성(長漢城)·광장성(廣壯城)이라고도 한다.

해발고도 200m 산정에서 시작해 동남쪽으로 한강을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진 산 중턱 위쪽을 둘러서, 둘레 약 1,000m 이상의 성벽이 구축되어 있으며 동쪽·서쪽·남쪽에 성문지(城門址)가 남아 있다. 산성의 형식은 테뫼식[鉢卷式]에 속하나 규모가 매우 크고 성안에 작은 계곡도 있어 포곡식(包谷式)으로도 보인다.

성벽 구조는 삭토법(削土法)으로 대체의 형태를 축조한 뒤 그 윗부분을 따라 돌아가면서 낮은 석루(石壘)를 쌓은 듯한데, 지금은 성벽들이 무너져 토석혼축(土石混築)과 같은 모습이다. 성벽 높이는 외부에서 보면 평균 10m 정도 되며, 내부에서는 1∼2m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475년 백제의 개로왕(재위 455∼475)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한 3만여 명의 고구려군과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아들 문주를 남쪽으로 피신시킨 뒤 자신은 이 산성 밑에서 고구려군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이로써 백제는 한성에서 웅진(熊津)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또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재위 559∼590)의 사위 온달(溫達) 장군이 죽령(竹嶺)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려고 신라군과 싸우다가 아차산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백제 초기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산성은 고구려가 잠시 차지했다가 신라 수중에 들어가 신라와 고구려의 한강유역 쟁탈전 때 싸움터가 된 삼국시대의 중요한 요새였다.






41. 안내도 : 삼각점이 용마산











42. 5호선 광나루역 1번출구에서...











43. 아차산생태공원











44. 망우리고개쪽











45.











46.











47.











48. 광진구청 홈에서











49.











50. 내가 주로 다니는 산길 - 외에도 여기루 저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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